벌써 3년 전의 일이다. 친구의 강력한 추천에 힘입어 혼자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었다. 

홀로 국내 여행을 종종 했었기 때문에 유럽에 '혼자' 가는 것에 대해선 큰 부담이 없었지만, '유럽'이라는 큰 땅덩이에 홀로 덩그러니 놓였을 땐 말 그대로 '홀로'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었다. 주변엔 읽을 엄두도 낼 수 없는 난생처음 보는 글자만 가득했고, 덕분에 중2 때부터 혐오하던 영어가 보일 때는 그렇게 반가웠다. 

 

  3일 정도 시차 적응을 겪고 나서, 아니 어쩌면 비행기에서 내려서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비몽사몽한 걸음 끝에 프라하성을 마주했을 때부터 나는 이 세상에 모든 걱정과 고민을 내려놓은 하나의 순수한 영혼이 되었다. 원래도 좋은 게 좋은 것 이라 생각하는, 조금은 물렁한 성격인 내가 ‘갓 퇴사한 사람’이 되었다는 건 마수를 마주한 전사가 전투에 필요한 모든 능력에 버프를 받은 것과 같았다. 새로운 것을 담는 두 눈동자는 분명 빛났을 테고, 자연스럽게 올라간 입꼬리는 내려오는 법을 잊었고, 기분 좋게 허밍을 하기도 했다. 

 

  목적도 없이 걸어 다니다가 새로운 인연을 만났고, 무식한 방법으로 목적지를 찾아가다가 바다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꽃밭을 찾아내기도 했다. 갑자기 내린 보슬보슬한 비는 눈앞의 풍경에 감성을 더해주었고 추워진 날씨는 카푸치노의 맛을 한 층 깊게 만들어주었다. 뭐든 마음먹기 나름이라지만, 유럽+퇴사 효과는 생각보다 더 훌륭했다. 부정적인 생각이라곤 조금도 들지 않았다. 아, 캐리어를 끌고 자갈길을 걸을 때는 제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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